← ALL DIRECTOR'S ESSAYSEXISTENTIAL ESSAY · OVERCOME

하루도 빠짐없이 미친놈이 되어보기로 했다.

강원도 화천 최전방 소초의 녹슨 철봉 앞에서 마주한 무력감과 영하 20도의 칼바람을 뚫고 당겨 올린 100일의 기록. 프리드리히 니체의 자기극복 철학으로 읽는 한계 돌파의 실존.

PHILOSOPHICAL LENS프리드리히 니체의 자기극복(Selbstüberwindung) — 어제의 나약한 나를 딛고 일어서는 100일의 기록
By Director Jake (안동현)·2026.07.20·7 min read

강원도 화천 최전방, 붉게 녹슨 철봉 아래의 굴욕

스물한 살 무렵, 강원도 화천의 험준한 능선을 따라 겹겹이 철책이 둘러쳐진 최전방 GOP 소초로 자대 배치를 받던 날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거친 비바람과 눈보라를 고스란히 맞으며 붉게 녹이 슨 철봉 하나가 좁은 연병장 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선임들이 가벼운 몸풀기처럼 철봉에 매달려 등 근육을 접었다 펴며 열 개, 열다섯 개씩 허공으로 가뿐히 솟구치는 모습은 막 도착한 신병의 눈에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내 차례가 돌아왔을 때 나는 남들에게 뒤처지기 싫은 오기로 차가운 쇠파이프를 힘껏 움켜쥐었습니다. 그러나 온몸의 기력을 쥐어짜 턱과 목덜미에 핏대를 세웠음에도, 내 몸뚱이는 마치 땅바닥에 박힌 말뚝처럼 단 1센티미터조차 위로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부들부들 떨리는 두 팔과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내 귓가로 짓궂은 웃음소리가 쏟아졌습니다. 내 신체적 무력함과 나약함이 온 세상 한복판에 발가벗겨진 듯한 뼈저린 치욕의 순간이었습니다.

영하 20도의 칼바람과 쇠파이프에 번진 검붉은 굳은살

그날 밤 삐걱거리는 침상에 누워 어두운 천장을 올려다보며 나는 내 삶에서 가장 지독한 결단 하나를 삼켰습니다. '내 두 손으로 내 몸 하나조차 온전히 들어 올리지 못하는 나약한 자아로는, 이 철책을 걸어 나가 마주할 사회에서 그 어떤 일도 해내지 못한다. 딱 백일 동안만, 단 하루도 빠짐없이 저 철봉에 매달려 미친놈처럼 당겨보자.'

다음 날부터 타협 없는 백일간의 사투가 시작되었습니다. 화천의 겨울은 살갗을 베어내는 영하 20도의 칼바람이 일상이었습니다. 심야 경계 근무를 마치고 내려와 전투화 속 발가락의 감각조차 무뎌진 새벽에도, 온몸이 부서질 듯한 피로가 덮쳐오는 날에도 나는 어김없이 연병장 구석의 철봉으로 향했습니다. 처음에는 온몸으로 반동을 주며 발버둥을 쳐도 턱 끝을 걸치는 한 개가 고작이었습니다. 얼음장 같은 쇠에 손바닥 살갗이 들러붙고, 물집이 터진 자리 위로 굳은살이 박였다가 다시 찢어지며 녹슨 철봉에 검붉은 피가 묻어났습니다. 밤마다 광배근과 어깨가 찢어질 듯 욱신거려 잠에서 깨어났지만, 나는 단 하루의 예외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니체의 자기극복, 어제의 나약한 나를 딛고 일어서는 의지

훗날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을 때, 나는 그 겨울 최전방의 능선 위에서 내가 무엇과 싸우고 있었는지를 비로소 철학의 언어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니체는 안락함과 적당한 타협 속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합리화하며 살아가는 왜소한 태도를 거부하고, 인간이란 고정된 완성품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넘어서야만 하는 존재임을 역설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친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너희는 인간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머리말

니체가 말한 '자기극복(Selbstüberwindung)'의 본질은 타인을 굴복시키는 외적 완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나는 원래 체력이 약한 사람이야', '이 정도 추위면 오늘은 쉬어도 괜찮아'라고 달콤하게 속삭이는 내 안의 나약한 어제의 자아에게 단호히 명령을 내리고, 고통의 시간을 통과해 어제보다 더 단단한 존재로 스스로를 다시 빚어내는 생명의 근원적 의지였습니다. 철봉 아래서 흘렸던 피와 땀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오기가 아니라, 스스로 규정한 한계의 감옥을 부수기 위한 가장 치열한 실존적 저항이었습니다.

백일째의 새벽, 중력을 찢고 솟구쳐 오른 열다섯 번째 호흡

기적은 요란한 예고 없이 침묵 속에서 찾아왔습니다. 보름이 지나도 미동조차 없던 등 근육이 어느 날 거짓말처럼 몸을 수직으로 끌어올리기 시작했고, 한 개가 세 개로, 세 개가 다시 일곱 개로 늘어났습니다. 손바닥의 찢어진 상처들이 겹겹이 아물며 쇠보다 단단한 갑옷 같은 굳은살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마침내 약속했던 백일째 되던 날 아침, 차가운 새벽 공기를 깊이 들이마신 나는 반동 하나 섞지 않은 정자세로 몸을 당겨 올렸습니다. 열 개를 넘기자 전완근과 등이 타들어 가는 듯한 비명을 질렀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어 끝내 열다섯 번째 턱이 차가운 쇠파이프 위로 완벽하게 솟구쳐 올랐습니다. 철봉에서 뛰어내려 언 땅을 두 발로 디딘 순간, 온몸을 타고 흐르던 찌릿한 전율을 평생 잊지 못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근육의 성장이 아니라, 내 안에서 '너는 안 돼'라고 속삭이던 패배주의적 자아의 껍질을 산산조각 낸 승리의 선언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명령할 수 없는 자는 남에게 복종해야만 한다. 생명이 있는 곳에서 내가 발견한 진리는 단 하나, 곧 모든 생명이란 스스로를 끊임없이 극복해야만 하는 그 무엇이라는 사실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2부 〈자기극복에 대하여〉

한 번이라도 임계점을 부숴본 자의 뼈대는 무너지지 않는다

EDITORIAL NOTE

타인을 이겨 얻은 승리는 일시적인 우월감을 남기지만, 어제의 불가능했던 나 자신을 정면으로 딛고 일어선 자기극복의 기억은 평생 어떤 시련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영혼의 뼈대가 됩니다.

전역 후 마주한 사회는 최전방의 겨울보다 훨씬 더 냉혹하고 거대한 벽들로 가득했습니다. 공들인 프로젝트의 실패, 인간관계의 균열, 끝이 보이지 않던 어두운 모색의 터널이 수시로 발목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주저앉고 싶은 순간마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그 시절 녹슨 철봉 위에서 피를 묻혀가며 당겨 올렸던 내 집념의 기억이었습니다.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 단 한 번이라도 죽을 각오로 임계점을 돌파해 본 사람은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스스로에게 몰입하는 자에게, 끝내 넘지 못할 벽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PHILOSOPHICAL DEEP DIVE · 이 에세이와 맞닿은 철학 원전 읽기

MORE DIRECTOR'S ESSAYS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