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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을 알면서도, 평범함에 안주했다.

퇴근길 맥주 한 캔 앞에서는 세상을 바꿀 듯 외치면서도 이튿날 만원 지하철에 숨던 비겁함의 기록. 사르트르의 자기기만과 키르케고르의 실존적 도약을 통해 안전한 핑계의 감옥을 부순다.

PHILOSOPHICAL LENS사르트르의 자기기만(Mauvaise Foi)과 키르케고르의 실존적 도약
By Director Jake (안동현)·2026.08.05·7 min read

퇴근길 맥주 한 캔 앞에서 쏟아내던 공허한 출사표

퇴근길 선선한 밤공기를 맞으며 차가운 맥주 한 캔을 비우던 밤들이 있었습니다. 마주 앉은 친구들 앞에서 나는 늘 비장한 혁명가처럼 열변을 토했습니다. 회사의 숨 막히는 관료주의와 느려터진 의사결정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이 낡은 시스템 안에서는 내 창의성과 잠재력이 썩어가고 있노라고, 조만간 사표를 던지고 내 프로덕트를 세상에 내놓을 것이라며 호기롭게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거짓말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어떤 시장을 파고들어 어떤 방식으로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지 머릿속에는 이미 그럴듯한 청사진이 수십 번씩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7시, 머리맡의 알람이 날카롭게 울리면 어젯밤의 야심 찬 창업가는 흔적도 없이 증발했습니다. 거울 속에는 퀭한 눈으로 셔츠 단추를 채우며 만원 지하철 개찰구로 순순히 걸어 들어가는 순종적인 생활인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매달 25일의 안전망과 실패의 민낯이 주는 공포

무엇을 해야 할지 정답을 훤히 알면서도 나는 왜 끝내 실행하지 못했을까요. 오랫동안 바쁜 업무와 부족한 자본을 탓했지만, 밤의 정적 속에서 마주한 진짜 이유는 훨씬 추레했습니다.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때 마주해야 할 ‘초라한 실력의 민낯’이 죽도록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회사라는 견고한 울타리 안에 머물면 아무리 불평을 쏟아내더라도 매달 25일에 어김없이 월급이 입금됩니다. 무엇보다 그 안에는 달콤한 면죄부가 있었습니다. 내 삶이 제자리를 맴도는 이유를 내 역량 부족이 아니라 ‘조직이 경직되어서’, ‘상사가 무능해서’, ‘경기가 좋지 않아서’라며 외부로 돌릴 수 있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주어졌으니까요. 그렇게 익숙한 불만 뒤에 숨어 1년, 2년을 흘려보내다 문득 명함 속 연차와 직급이 내 자아의 전부인 양 굳어져 가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등골을 타고 서늘한 전율이 흘렀습니다.

사르트르가 고발한 자기기만, 자유를 부정하는 가장 우아한 변명

장폴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내가 빠져 있던 이 비겁한 안락함을 ‘자기기만(Mauvaise Foi)’이라는 예리한 메스로 해부합니다. 남에게 거짓말을 할 때는 속이는 자와 속는 자가 분리되어 있지만, 자기기만은 내가 진실을 뻔히 알면서도 나 자신을 교묘하게 속여 넘기는 실존적 위선입니다. 본질이 미리 결정된 책상 위의 종이칼과 달리, 인간은 매 순간 스스로를 새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이건만 그 자유가 동반하는 무거운 책임을 피하기 위해 마치 어쩔 수 없는 환경에 묶인 사물인 척 연기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유라는 형벌에 처해져 있다. 한 번 세상에 내던져진 이상, 자신이 행하는 모든 것에 대해 스스로 온전히 책임을 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 장폴 사르트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시드머니가 조금만 더 모이면’, ‘실무 경험이 한 해만 더 쌓이면’, ‘시장의 바람이 우호적으로 바뀌면’ 시작하겠다는 나의 신중한 계획들은 실상 사르트르가 꼬집은 자기기만의 전형이었습니다. 안전지대에 머물기로 한 것은 분명 나의 비겁한 ‘선택’이었음에도, 나는 그것을 불가피한 ‘상황’으로 위장한 채 감옥 문을 안쪽에서 걸어 잠그고 창살을 욕하는 연극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능성의 심연 앞에서 느끼는 현기증과 키르케고르의 도약

익숙한 평범함을 박차고 나가는 일이 이토록 아찔한 이유를 쇠렌 키르케고르는 《불안의 개념》에서 ‘가능성 앞의 현기증’으로 설명했습니다. 높은 절벽 끝에 서면 떨어질까 봐 두려운 동시에, 내가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 발을 내디딜 수도 있다는 무한한 자유의 가능성이 정신에 아득한 현기증을 일으킵니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다. 정신이 스스로의 무한한 가능성을 내려다볼 때 눈이 아찔해지며, 추락하지 않으려 눈앞의 유한한 난간을 움켜쥐게 된다.”

— 쇠렌 키르케고르, 《불안의 개념》

내가 부여잡고 있던 평범한 일상의 루틴은 바로 그 절벽 위의 낡은 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키르케고르가 강조했듯, 인간이 군중의 익명성을 벗어나 고유한 ‘단독자’로 거듭나는 일은 머릿속의 안전한 계산으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난간에서 손을 떼고 불확실성 속으로 발을 던지는 ‘실존적 도약’을 통해서만 가능성은 비로소 현실의 뼈대를 얻습니다. 모든 조건이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말은 영원히 도약하지 않겠다는 항복 선언과 다르지 않습니다.

완벽한 타이밍이라는 환상을 찢고 오늘 밤 한 줄의 균열을 내다

그 서늘한 자각 이후 나는 술자리에서의 거창한 출사표를 멈추었습니다. 대신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책상 앞에 앉아 단 한 시간이라도 내 이름의 문장을 쓰고, 내가 구상한 서비스의 화면 설계도를 직접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거대한 퇴사 선언이 아니라 오늘 밤의 1시간을 핑계 없이 연소시키는 작은 결단이 쌓일 때, 비로소 평범함이라는 두꺼운 콘크리트 벽에 진짜 균열이 생겨났습니다.

EDITORIAL NOTE

안주하는 삶이 건네는 당장의 안락함은 결코 무료가 아닙니다. 가능성을 유예하며 빌려 쓴 오늘의 평온함은, 훗날 돌이킬 수 없는 후회라는 가장 가혹한 이자로 청구됩니다.

정답을 이미 알고 있다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변명 뒤에 숨지 않을 결기뿐입니다. 완벽한 계절은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오늘 밤 당신의 손끝으로 내딛는 투박하지만 주체적인 한 걸음만이, 자기기만의 긴 잠을 깨우고 당신을 진짜 실존의 영토로 데려다줄 것입니다.

PHILOSOPHICAL DEEP DIVE · 이 에세이와 맞닿은 철학 원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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