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의 꿈, 평범한 출근.
9호선 급행열차 손잡이에 매달린 채 거대한 야망의 오디오북을 듣던 아침의 부조리에 대하여. 알베르 카뮈의 시시포스와 오스카 와일드의 시선으로 매일의 성실한 노동을 재정의한다.
아침 8시 15분, 9호선 급행열차 손잡이에 매달린 100억짜리 자아
아침 8시 15분, 9호선 여의도행 급행열차 승강장. 열차의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한 인파의 파도에 떠밀려 객차 안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낯선 이들의 외투 깃과 서류가방 모서리에 끼인 채 숨을 고르고, 급정거하는 환승 구간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머리 위의 플라스틱 손잡이를 손마디가 하얘지도록 움켜쥡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내 귓속 이어폰에서는 실리콘밸리 창업가들의 대담과 수백억 자산을 일군 경영자들의 오디오북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가슴속에는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압도적인 경제적 자유를 거머쥐겠다는 100억짜리 야망이 용광로처럼 들끓는데, 까만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현실의 나는 구두코가 밟히지 않으려 발끝에 힘을 주고 있는 직장인 A일 뿐이었습니다. 비대한 이상의 크기와 남루한 출근길 풍경이 정면으로 충돌할 때 밀려오는 이 서글픈 감각을, 철학은 오래전부터 ‘부조리’라 불렀습니다.
화려한 전시의 시대가 부추기는 일상에 대한 오만한 경멸
스마트폰 화면을 열면 온통 20대에 수십억을 벌었다는 이들의 슈퍼카와 고층 호텔 라운지의 풍경이 범람합니다. 그 현란한 이미지에 시선이 길들여질수록, 점심시간에 9천 원짜리 구내식당 식판을 들고 줄을 서거나 오후 내내 엑셀 시트의 숫자 오차를 맞추는 내 하루는 한없이 시시하고 하찮은 시간 낭비처럼 여겨지곤 했습니다.
‘나는 원래 이런 자잘한 실무나 처리할 그릇이 아닌데’라는 오만한 속삭임이 고개를 들 때마다 눈앞의 일에 대한 정성은 급격히 무너졌습니다. 거대한 미래의 자아를 동경한다는 핑계로 오늘의 성실한 노동을 업신여기며, 정작 아무것도 제대로 쌓아 올리지 못한 채 자괴감만 키우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상의 높은 고도가 현실을 비추는 등대가 되는 대신, 지금 서 있는 땅을 저주하는 그림자가 되어버린 셈입니다.
알베르 카뮈의 시시포스, 출근길의 바위를 내 것으로 긍정하다
이 분열된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 매준 것은 알베르 카뮈의 《시시포스 신화》였습니다. 카뮈는 현대인의 삶을 “기상, 전차, 사무실에서의 네 시간, 식사, 전차, 다시 네 시간의 노동, 식사, 수면, 그리고 똑같은 리듬으로 반복되는 월화수목금토”라고 묘사하며, 어느 날 문득 ‘왜?’라는 질문이 솟아오를 때 부조리가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영원히 굴러떨어질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의 형벌은 매일 아침 9호선에 몸을 싣는 우리의 자화상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이 바위의 부스러기 하나하나, 밤으로 가득 찬 이 산의 광물 빛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산정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시시포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만 한다.”
카뮈가 시시포스를 비극의 패배자가 아닌 반항하는 승리자로 호명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시시포스는 허황된 기적을 구걸하거나 산을 원망하며 주저앉지 않고, 차가운 바위의 결을 두 손으로 똑똑히 감각하며 그것을 ‘자기 자신의 일’로 인수하기 때문입니다. 운명을 경멸이 아닌 명징한 의식으로 직시하는 순간, 신들이 내린 형벌은 인간의 주체적인 산행으로 바뀝니다.
거대한 산맥을 옮기는 것은 결국 매일의 묵묵한 흙 한 삽이다
시선을 가다듬고 내가 동경하던 거장들과 창업가들의 실제 연대기를 집요하게 파고들었을 때, 나는 화면 너머에 가려져 있던 단 하나의 진실과 마주했습니다. 위대한 성취를 이룬 이들 역시 예외 없이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의 과업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견뎌낸 ‘지독한 생활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100억이라는 결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가 아닙니다. 매일 약속된 시간에 자리를 지키며 기본기를 다지고, 타인과의 신뢰를 증명하며, 퇴근 후 고요한 책상 앞에서 한 줄의 코드를 더 짜고 한 페이지의 시장 보고서를 축적해 낸 무수한 평일의 합산입니다. 화요일 오전의 평범한 실무를 하찮게 여기는 손끝에서는 결코 세상을 뒤흔들 정교한 프로덕트가 탄생할 수 없습니다.
두 발은 진흙탕을 단단히 딛고, 두 눈은 밤하늘의 별을 향하여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살고 있지만, 우리 중 몇몇은 별을 바라보고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이 유명한 문장이 아름다운 까닭은, 별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시궁창이라는 현실의 중력을 부정하며 허공에 떠 있는 몽상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원 지하철에서 버텨낸 출근길은 결코 초라한 굴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원대한 꿈이 조급함에 꺾이지 않도록 지켜주는 든든한 재정적 베이스캠프이자,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을 근육을 길러내는 가장 정직한 수련장입니다.
평범한 출근길의 루틴을 경멸하는 사람은 결코 비범한 정상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가슴속에 거대한 별을 품되, 오늘 내 손에 쥐어진 바위를 가장 정성스럽고 단단한 걸음으로 밀어 올리십시오.
내일 아침에도 나는 어김없이 9호선 급행열차 손잡이를 잡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유리창 속의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상의 크기만큼 오늘 내게 주어진 하루의 노동을 무겁고 정교하게 완수할 때, 아득하던 별빛은 마침내 내 발밑의 현실로 걸어 내려올 것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