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자가 아니라 행하는 자가 되는 법: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레테(탁월함)와 실천의 존재론
머릿속의 순수한 이상과 가능성에만 머무는 관념적 자아를 넘어, 일상의 구체적인 행위와 습관(Hexis)이 어떻게 인간의 본질을 조각하는지 아리스토텔레스와 한나 아렌트의 철학으로 규명한다.
시작하지 않은 완벽한 꿈은 자존감을 지키는 가장 달콤한 핑계다.
머릿속에 머물러 있는 이상은 현실의 마찰에 긁히지도, 초라한 첫 결과물로 평가받지도 않기에 언제나 흠결 없이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잠재성의 환상에 머무는 한, 삶에서는 단 한 줄의 서사도 현실이 되지 않습니다.
가능태(Dynamis)가 아니라 현실태(Energeia)가 인간의 본질을 결정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올림피아 제전의 월계관은 관중석의 건장한 구경꾼이 아니라 실제로 경기장에 뛰어들어 경쟁하는 자에게만 주어진다고 말했습니다. 한나 아렌트 역시 인간은 오직 행위(Action)를 통해서만 세계 속에 '내가 누구인지'를 드러낸다고 역설했습니다.
우리는 정의로운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정의로운 사람이 되며, 실천을 통해서만 탁월해진다.
내면에 먼저 완성된 품성이 있고 그다음에 행동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의 구체적인 동작과 선택이 쌓여 체화된 품성상태(Hexis)를 만들고, 그 습관의 결정체가 곧 아레테(탁월함)입니다.
꿈을 명사에서 동사로 바꾸어 오늘 하루의 시간표 위에 기입하라.
골방에 앉아 '나의 진짜 본질은 무엇인가'를 추상적으로 골몰하는 일을 멈추십시오. 아침부터 밤까지 내 손과 발이 반복하고 있는 일상의 실천(Praxis)이 곧 세계 앞에 새겨지는 나의 가장 정직한 실체입니다.
시작하지 않은 완벽한 꿈은 자존감을 지키는 가장 달콤한 핑계다.
머릿속에 머물러 있는 이상은 현실의 마찰에 긁히지도, 초라한 첫 결과물로 평가받지도 않기에 언제나 흠결 없이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잠재성의 환상에 머무는 한, 삶에서는 단 한 줄의 서사도 현실이 되지 않습니다.
아직 시작하지 않은 완벽한 이상이라는 달콤한 도피처
주변을 둘러보면 섬세한 안목과 원대한 비전을 품고 있으면서도, 현실의 땅 위에서는 수년째 첫 삽조차 뜨지 못하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노트에는 완벽한 기획안이 빼곡하고 대화 속에는 멋진 청사진이 가득하다. 왜 총명한 정신들이 이토록 오랫동안 '영원한 준비생'의 자리에 머무르는 것일까? 그 이면에는 관념의 세계가 제공하는 은밀하고 달콤한 면죄부가 숨어 있다.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꿈은 현실의 저항에 부딪혀 일그러지지도 않고, 미숙한 초고의 민낯을 드러내어 검증받을 위험도 없기 때문이다.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았을 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은 상처받기 싫은 에고가 고안해 낸 가장 정교한 방공호다. 그러나 철학의 엄정한 시선으로 볼 때, 세계의 구체적 조건 속으로 걸어 나와 행위로 번역되지 않은 내면의 고결함은 한낱 신기루에 불과하다. 사유의 역사에서 이 관념적 자기기만을 가장 명쾌하게 격파한 철학자가 바로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가능태(Dynamis)에서 현실태(Energeia)로
스승 플라톤이 초월적 이데아에 주목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금 여기의 구체적인 활동 속에서 인간의 최고선(에우다이모니아, 잘 삶·번영)을 찾았다. 그의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 축은 잠재적 능력인 '가능태(Dynamis)'와 그것이 실제 활동으로 발현된 '현실태(Energeia)'의 구분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권 제8장에서 그는 명쾌한 비유를 든다. 올림피아 경기장에서 승리의 화관은 관중석에서 가장 체격이 건장한 구경꾼에게 씌워지지 않는다. 오직 모래판 위로 직접 걸어 나와 땀 흘리며 경주하는 선수들, 곧 가능태를 현실태로 밀어 올린 행위자들에게만 영예가 돌아간다.
“우리는 먼저 눈과 귀를 가진 뒤에 보고 듣게 되지만, 탁월함(Arete)의 경우에는 먼저 그것들을 발휘하여 행위함으로써 비로소 얻게 됩니다. 집을 지음으로써 건축가가 되고, 키타라를 연주함으로써 키타라 연주자가 되듯, 정의로운 일들을 행함으로써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절제 있는 일들을 행함으로써 절제 있는 사람이 됩니다.”
이 대목은 자아와 실천의 선후 관계를 완전히 전복한다. 흔히 '내 안에 먼저 확고한 의지와 완성된 실력이 갖춰지면 실행에 옮기겠다'고 말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정반대로 말한다. 용기 있는 내면이 먼저 완성된 뒤 용감한 행동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 있는 행동을 선택하고 반복함으로써 비로소 용기라는 품성이 조형된다. 윤리적 탁월함(Ethike arete)이 습관을 뜻하는 '에토스(Ethos)'에서 유래했듯, 일상의 반복된 행위가 영혼에 새겨진 품성상태(Hexis, 헥시스)가 곧 나라는 인간의 본질이다.
머릿속 이론(Episteme)을 현실로 착지시키는 실천적 지혜, 프로네시스(Phronesis)
꿈이 현실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완벽한 원리만 찾느라 당장 눈앞의 불완전한 조건 속에서 결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6권에서 불변의 법칙을 다루는 이론적 지식인 '에피스테메(Episteme)'와, 매 순간 변전하는 구체적 상황 속에서 지금 내가 무엇을 어떻게 행해야 좋은지를 가려내는 실천적 지혜인 '프로네시스(Phronesis)'를 구분했다. 항해술 교본을 백 권 외웠더라도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와 바람 앞에서 직접 키를 잡지 않으면 바다를 건널 수 없듯, 삶의 탁월함은 추상적 원리가 아니라 개별 사건을 다루는 프로네시스와 실천(Praxis)에서 판가름 난다.
탁월함(Arete)은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지는 영감의 번개가 아니다. 그것은 고상한 이상을 오늘 하루의 투박한 동작으로 번역해 내는 습관(Hexis)의 축적이며, 가능태를 현실태로 전환하는 일상의 규율이다.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행위(Action)를 통해서만 드러나는 '내가 누구인가'
20세기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1958년 저작 《인간의 조건》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 철학을 계승하며, 왜 인간이 골방의 관념을 박차고 나와 세계 속에서 행위해야 하는지를 빛나는 언어로 규명했다.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적 삶(Vita Activa)을 노동, 작업, 그리고 타자들과 더불어 새로운 사건을 개시하는 '행위(Action)'로 나누었으며, '행위하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 '아르케인(Archein)'의 본래 뜻이 '시작하다, 앞장서다'임을 상기시켰다.
“인간은 말과 행위를 통해 인간 세계 속에 자기 자신을 기입하며, 이러한 기입은 우리가 태어날 때의 본래 모습을 재확인하고 스스로 떠맡는 제2의 탄생과 같다. 행위와 말이 없다면 세계 속에 현현하는 고유한 인격으로서의 '누구(Who)'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아렌트의 '탄생성(Natality)' 개념은 깊은 울림을 준다. 내가 가진 재능이나 조건 같은 '무엇(What)'은 이력서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지만, 내가 대체 불가능한 고유한 인격으로서 '누구(Who)'인지는 오직 세계 한복판에서 책임 있게 내뱉는 말과 새롭게 개시하는 행위를 통해서만 빛처럼 드러난다. 행위하지 않고 내면의 순수성만 끌어안고 있는 자아는 타인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끝내 불투명한 그림자로 남을 뿐이다.
꿈을 명사에서 동사로 바꾸는 실천의 문법
실천의 존재론은 우리에게 질문의 방식을 바꿀 것을 요구한다. 어두운 방에 홀로 앉아 '나의 진짜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관념적으로 파헤치는 대신, 꿈을 화려한 '명사'에서 매일 반복할 수 있는 작고 명확한 '동사'로 해체하라. 작가를 꿈꾸는 자가 아니라 오늘 한 단락의 문장을 고쳐 쓰는 자가 작가이며, 사려 깊은 인간을 동경하는 자가 아니라 오늘 마주친 갈등 앞에서 중용을 행사하는 자가 품성 있는 인간이다. 미숙한 첫 시작의 부끄러움을 감수하며 가능태를 현실태로 밀어 올릴 때, 비로소 우리의 일상은 동경의 대기실이 아니라 탁월함이 빚어지는 살아 있는 작업장이 된다.
사유를 삶으로 옮기는 질문
- Q1.상처받거나 미숙함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아직 완벽히 준비되지 않았다'는 핑계로 머릿속 가능태(Dynamis)에만 가두어 두고 있는 나의 오랜 꿈은 무엇인가?
- Q2.내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명사(예: 창작자, 리더, 사유하는 사람)를 오늘 당장 실행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이고 반복 가능한 동사(Hexis)로 번역한다면 그것은 어떤 행동인가?
- Q3.나의 머릿속 다짐이 아니라 지난 한 달간 내 손과 발이 실제로 수행한 행위(Action)의 기록만을 놓고 볼 때, 세계 앞에 드러난 나는 지금 '누구'인가?
PRIMARY SOURCES & REFERENCES · 참고 고전 및 문헌
- [1]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Ethica Nicomachea), 이창우·김재홍·강상진 옮김, 이제이북스.
- [2]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 1958), 이진우·태정호 옮김, 한길사.
- [3]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덕의 상실》(After Virtue, 1981), 이진우 옮김, 문예출판사.
- [4] 조나단 반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A Very Short Introduction, 2000), 문계석 옮김, 시공사.